2009년 06월 10일
[당 정치위원회의 성명서] 오늘은 6월 항쟁 22주년입니다.

[불평불만] '정부'가 6월 10일 '불법시위 엄단'을 천명했군요.
[불평불만] 20세기 연대기 : 1986년 필리핀과 87년 6월 항쟁.
오늘은 6월 민주화항쟁 (줄여서 6월항쟁, 지방에 따라 6월 민주대항쟁)의 22주년이 되는 날 - 그러니까 22년전 오늘부터 29일까지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갈망하는 분들이 전두환의 독재정권에 맞서 직선제를 쟁취한 날입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1987년 당시의 전두환 정권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1987년 1월 14일, 당시 전두환 정권 하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붙잡힌 故 박종철 열사(1964~1987.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회장)는 경찰에게 물고문을 당했고, 끝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던 경찰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물고문 얘기는 빼고,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라고 구라빨을 선사합니다. 게다가 그 일이 있기 전에, 검찰과 경찰은 법의학 1과장 황적준 박사를 협박하여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를 '심장마비'로 바꿔버리는 전국구 사기질을 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윤상삼 기자는, 당시 부검의였던 오연상 교수에게 전말을 듣게 되었고, 동아일보에 이를 싣게 됩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박종철 열사를 고문한 세명의 수사관은 내버려둔채 조한경,강진규 수사관을 구속시키는 선에서 마무리지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당시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이부영과 교도관 한재동에 의해 누설되었고, 이는 그해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김승훈 신부에 의해 세상에 폭로됩니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반독재/반정부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전두환은 언제나 그랬듯이 모르쇠로 일관했지요. 당연히 충정봉과 최루탄도 함께...





<당시 박종철 열사에 관한 호외(左), 그리고 전두환 정권의 은폐조작을 폭로하는 김승훈 신부(右)>
게다가 이 때는 7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한 전두환 정권의 마지막 해인지라, 어떤 형식으로라도 정권이양 문제에 대해 거론하고 넘어가야할 시점에 다다릅니다. (물론 전두환 본인은 자신이 '물러난 후'에도 막후실세가 되기 위해 재벌들에게 돈을 갈취하는 형식으로 일해재단 등의 재단을 만들었지요.).
그해 4월 13일 전두환은 TV담화를 통해 '국력을 한데로 모아야할 중차대한 시기에 개헌논의로 국력이 분열,소모됨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따라서 88올림픽이 끝날때까지 개헌논의를 일체 금지하고, 현행법으로 정권을 이양하겠다.'라는 성명을 냅니다. 이를 한국현대사에서는 호헌(護憲)성명이라고 합니다.
이 이후로 호헌에 반대하는 투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는데, 48개 대학교수의 1510명, 전현직 국회의원 및 문학가, 성직자, 영화감독과 음악가 등의 예술가, 의사-한의사-약사-간호사 등의 전문직. 대학교 학생들 등 그야말로 각계각층이 시국성명을 발표하고,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기도회와 단식회가 잇달아 열리게 됩니다.
그로부터 2달 남짓 후, 잠실체육관에서는 민주정의당(민정당)에서 13대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게 되는데 그 지명자가 바로

입니다.
바로 전두환의 친구이자, 전두환 밑에서 딸랑거리며 12.12 쿠데타를 일으켰고, 광주에서 무고한 인명을 학살하게 한 장본인 중 한명으로 만인의 지탄과 손가락질을 받은 인물이지요. 이로 인해 반독재/반정부 투쟁은 그 어느때보다 치열해져갑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은 이런 민주화 요구를 '불법시위'라고 지조때로 씨부립니다. 지금 이명박 하는 짓과 매우 똑같지요.

그러던 와중 6월 9일. 당시 연세대학교에 재학중인 한 학생이 학교 앞 시위 중 경찰이 쏜 최루탄 - 그것도 직격탄에 맞아 부상당하여 빈사상태에 빠진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학생은 7월 5일, 열사의 칭호를 받고 숨지게 되는데, 그가 바로 故 이한열 열사입니다.

택시운전사들이 전두환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 뜻으로 차를 세우고 경적을 울리고, 여고생들은 민주화항쟁 참여자에게 마실 물을 가져다주고, 길거리의 상인들은 팔아야할 물건을 나눠주는 등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을 하여 서울도심에서 민주화 시위가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집회부터 일종의 문화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민주화투쟁보다 일반인들의 참여가 더 쉬워졌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이후 시위는 들불처럼 번져, (6월 26일 기준으로) 전국 37개 도시에서 국민평화대행진 시위가 전개되었고 3,467명이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성공회서울대성당에서는 감사성찬례(성공회 미사)때 피아노를 연주할 예배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관계자가 경찰의 감시를 피해 교회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규석 화백의 100'c에 이 장면이 페러디되었지요.


하지만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16년만에 대통령선거가 직접선거로 치러졌지마는, 당시 야당의 중심축이었던 김대중 통일민주당 고문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가 대통령후보 출마를 놓고 공식 선거전을 앞둔 그해 10월에 분열을 일으키면서 독자 출마를 강행하게 되었고, 이런 만주화 진영의 내분에 의해 결국 6월 항쟁의 중심 역할을 했던 민주세력의 통합이 무산되면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애초에 노태우의 항복선언이. 양김(김영삼. 김대중)을 분열시켜 민주화세력을 약화시키고, 노태우의 당선을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안사에서 기획된 각본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당시 후보는 (기호순으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백기완 이렇게 나왔는데, 보안사와 안기부의 지역감정 유발작전에도 불구하고 100만표가 모자라는 등, 노태우 후보의 열세가 이어졌지만, '공교롭게도' KAL858기 공중폭발 참사가 일어나 막판뒤집기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6월항쟁은 미완의 항쟁이 아닙니다. 이 6월 항쟁으로 인해 한국의 민주화 속도는 더 빨라졌고, 6월항쟁의 영향으로 크고작은 노동조합이 일어서게 되었는데, 이는 울산 옥교동에서의 현대엔진의 노동조합 결성(1987 7월 5일)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한번 일어난 투쟁의 불길은 부산-거제-마산-창원 등으로 퍼져 갔고,결국에는 수도권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조업 뿐이 아닌 운수업, 광업, 사무·판매·서비스직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5.18과 더불어 6월항쟁 역시 민주화 진영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는 작년 쇠고기파동사건(2008)과 현재(2009)의 촛불집회로 표현되는 민중화항쟁으로 되살아납니다.


당원 여러분.
6월 10일을 22주년 맞아, 이명박 파시스트 도당은 서울시민들에게 열려야할 광장을 요리조리 갖은 핑계로 막으려고 하고, 딴나라당과 그의 똘마니들은 되도않는 소리를 씨부리면서 자유와 민주주의 말살을 우려-규탄하는 시국선언을 개독놀이와 숫자놀음 어쩌구, 2등국민 광대놀음 어쩌구, 팩트가 어쩌구, 그리고 되도않는 육두문자 키워질로 폄하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왕따적 비사교성 기질을 가진 반사회적-반인류적 정신질환 사이코패스는 내비두고,) 모든 분들은 인류보편적 가치인 자유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자유가 어떻게 되고 있으며, 당신이 키보드를 누르는 것을 제한하려는 것에 대해서도, 그리고 22년전 그날의 사람들이 보고싶어한 게 무엇이였는지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제가 미국에 체류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 - 비록 이라크전의 미군 서포트 구절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새겨두었으면 합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지금도 오락가락하신 분들 - 특히 '20대' 여러분들도 명심하세요.
스펙만 올린다고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투자한 만큼 이윤을 배분받는다는 원칙은 기업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덧 2 : 그리고 이번 촛불집회에 참전하는 분들에게 미력한 조언과 부탁드릴 것이 있으니,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명박 파시스트 쥐새끼와 타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사탕발림과 감언이설에 속아서 가드를 내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일단 그는 공식전과 14범입의 범죄자입니다.)
어줍잖은 톨레랑스 정신으로 극우파들을 용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악인에게 베푸는 쓸데없는 자비는 미덕이 아니라 악덕입니다.
잘 기억이 안난다고요? 작년에 청와대 뒷동산 어쩌구 성명 후에 벌인 작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폭력을 먼저 쓰지 마세요. 우리가 파시스트 잡배인가요??)
특히 3~4번째 구절이 일어날 상황을 위해서 독일의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Freidrich Nietzsche. 1844 ~ 1900) 선생은 '선악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준비하셨지요.
당신이 (괴물과 싸우기 위해)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그 심연(안의 괴물)도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 by | 2009/06/10 13:25 | 당수 직속기관 - 당 정치위원회 | 트랙백 | 덧글(4)






![삼국지 전편박스세트 뉴패키지(28disc) [알라딘 특가]](http://image.aladdin.co.kr/coveretc/dvd/coveroff/9104052560_3.jpg)













![화려한 휴가 (3disc) : 한정판 [2,000원 쿠폰 증정]](http://image.aladdin.co.kr/coveretc/dvd/coveroff/3932430881_1.jpg)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이게 와닿는구먼
※참고로 저 구절은, 제가 1년전 홈스테이 시절의, 전직 미군 상사이신 주인장 어르신(William Kenny)의 저택(?)의 냉장고 앞에 붙어있는 자석형 스티커입니다..(!!!!)
레고군 / 동생의 탄신일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남은 케익은 EMS로...(!!!!)
Joven / 그런데 그걸 뺏어가려는 놈과, 무임승차로 가져가려는 애들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