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역사연구소] 당 역사연구소와 급양대의 부글부글 키친 11/13 (브금주의)

[1]

Q : 지금 우리가 흔히 먹는 치즈 중 하나가 체다 치즈 (Cheddar Cheese [英])라던데, 당시에도 이 치즈를 먹었나요?
A : 잉글랜드의 서머셋 지방의 체다라는 마을에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해서 체다 치즈라고 부르는 이 치즈는, 1600년대부터 등장한, 근세기의 치즈입니다. 1655년경부터 언급이 되는 이 '체다 치즈'는 처음엔 치즈 제조 공정만을 가리키는 말이였고, 18세기부터 정립화됩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연재중인 시점에서인 14세기의) '체다 지방에서 만들어진 치즈'가 현재의 체다 치즈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2]

Q : 당시에도 과자 (Cookie [英])가 후식으로 제공되었나요? 설명에선 '튀긴 밀가루 반죽에 계피가루와 설탕를 뿌려서 과자로 먹었'다고 했잖아요?
A : 현재 쿠키라고 부르는 과자엔 베이킹파우더나 베이킹 소다가 들어가는데, 이 둘은 18세기에 발명되었습니다. 베이킹 소다나 파우더 대용으로 쓸 수 있는 물질인 중탄산암모늄 (Ammonium Bicarbonate / Sal Volatile / Salt of Hartshorn)은 중세 말기에 발견되긴 했지만, 17세기 이전까진 제빵이나 제과에 이용되지 않았습니다.
[3]

Q : 유럽은 농경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고기 소비가 많았던 시대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기를 제공하는 도축업자의 사회적 대우는 어떠했나요?
A : 먼저 확실히 해두자면, 지금부터 얘기하는 정육점은 당시 대부분의 점포가 그랬듯이, 도축장과 정육점 모두를 의미합니다.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권 나라에서는 도축업자를 사람 대접을 해주진 않았지만, 여기선 상대적으로 나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프랑스 왕국의 예를 들면, 필리프 2세 치하의 파리 내엔 많은 정육점들이 성업중이였었고, 이 점주들은 시내 의회나 행정관청 (Prévoté [彿])의 요직을 차지했고, 이들 중 일부는 귀족으로 승급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400년대엔 이런 도축업자들이 푸아티에에서 도축업자들이 영주 앞에서 선서를 하면서 '데모'를 벌이는 일까지 벌어졌고, 이들의 영향력은 도시 내에서 증대되었습니다.
또한, 이제까지 소개한 프랑스 왕국의 요리책이였던 '메나지에 드 파리 (Le Menagier de Paris [彿])에선 (발간 당시 기준으로) 파리 시내의 유명한 정육점의전화번호 명단과 배달 서비스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육류 소비가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을 반영하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도축업자가 부유하고(속된 말로) 끗발날리는 직업'으로 취급하면 안됩니다. 경제가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던 10~13세기까지면 달리 생각할 여지는 있겠지만, 14세기와 15세기엔 이런 성공한 도축업자들 상당수는 '작업 일선'에서 물러난 지배인과 비슷한 위치였었고, 실제 도축은 종업원들이 했습니다. 그나마 이런 '도축업자' 대부분은 부와 명성을 쌓은 16세기 이후부턴 이 '지저분한 가업'에서 손을 뗐기 때문에, 항상 구별해서 생각하여야 합니다.
[4]

Q : 듣고보니, 도축업자가 무슨 사업자 같은데...
A : 실제로 그런 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14세기쯤엔 그들 스스로 조합(길드)을 결성해서, 그들이 고용한 중계인 (Nourrigiers)와 양치기들을 통한 조합 소속 도축업자들이 쓸 가축 - 특히 양을 소유 및 방목하고, 그 도축으로 얻어진 부산물들 - 가죽이나 양모, 기름 등을 판매하거나 투자하는 등 고도의 사업체로 발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방목지에 거주중인 주민들과 마찰을 빛거나, 채소를 기르는 현지 농민들과 충돌이 일어났던 적도 있었습니다.
고기와 관련된 얘기는 아니지만, 중세 유럽에선 사순절 덕택에, 사순절 기간에 먹을 생선을 양식하거나, 이를 위한 치어 납품 사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번 사례도 있습니다.
[5]

Q : 저번 향신료 편에서 언급한 식품위생에 관한 법에 대해서 더 얘기해 주세요. 당시 식품점...그러니까, 정육점이나, 생선가게를 차릴때 나라에서 규제같은 걸 한 적이 있었나요?
A : 여러번 언급한 사항이지만, 당시의 식품위생 규정은 현대인의 생각보다 엄격했습니다. 비록 냉장고나 방부제 등은 없었지만, 상한 고기나 음식을 먹으면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것쯤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정육점에선 진열대 한개에 모든 고기를 '해가 떠서 해가 질 때'까지만 고기를 팔 수 있고, 촛불이나 등불로 주위를 밝혀서 고기를 판매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생고기와 더불어 염장고기도 팔긴 했지만, 손님이 고기의 신선도를 직접 확인하고 살 수 있게 법으로 규제를 한 셈입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바가지를 씌우거나, 교묘하게 색을 가려서 오래된 고기를 파는 양심불량업자 또한 존재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정육점들은 동물을 도축하고 난 찌꺼기 고기들을 점포 문 밖에 버렸는데, 이런 이유때문에 위생문제가 불거지면서 시내 중심에 정육점을 운영할 수 없게 규제가 가해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3세기까진 이런 정육점들은 도시 외곽에 임시로 마련된 부도심 지역에 입점이 가능했지만, 점차 육류소비가 많아지면서 규제가 완화되고, 정육점들이 도시 중심부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생선가게도 마찬가지였는데,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생선가게는 아무리 염장을 해서 팔았다고 해도 비린내가 심한 품목에 속해서, 이들 점포를 한 지점에 다닥다닥 몰아서 짓지 못하게 규제한 것도 있습니다.
[6]

Q : 저번 향신료 편에선 향신료 사용은 요리사의 재량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럼 요리사가 마음대로 써도 되나요?
A : 요리에 얼마만큼의 향신료를 쓸 것인가는 요리사의 재량입니다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향신료는 귀중품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여타 보물이나 재산들처럼 관리대상 품목에 들어갔고, 주기적으로 관련 장부를 작성하는 것이 의무였기 때문에, '물 쓰듯이' 쓸 수는 없었습니다.
일례로, 13세기에는 향신료의 보관 또한 전적으로 요리사의 업무였었지만, 14세기에 들어서면 (프랑스 왕국에서는) 이런 향신료들과 같은 식재료를 관리하기 위해 왕실과 각 지방의 영주들이 식품담당관을 임명했는데, 잔치가 열리면 주방장 (각 영지의 수석 요리사)가 전체 코스에 필요한 향신료의 양을 신청하여 수령하고, 이를 각 하위 조리사에게 분배하는 형식으로 관리되었습니다.
[7]

Q : 그러면, 요리책에서 향신료나 재료의 정량을 알려주는 건 언제부터였나요? 그리고 왜 그런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나요?
A : 요리책에서 각종 재료의 정량을 언급한 때는 19세기부터였습니다. 중세 유럽이나 근대엔 책 자체가 고급품이였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고, 무엇보다도 당시 요리책의 저자들은 그 책을 '평범한 주부'가 아니라 전문가용으로 편찬했기 때문입니다. (몇몇을 제외한) 이제까지 올려둔 요리 레시피엔 향신료가 꼭 언급이 되는데, 이는 '이 요리책을 보는 사람은 최소한 요리에 대한 지식과 경력이 평균 이상이고, 높은 사람에게 고용된 요리 전문가'라고 간주했기 때문에, 굳이 정확한 양을 쓸 필요는 없다고 여긴 탓이 큽니다.
[8]

Q : 당시 유럽 요리에서 향신료를 왜 그렇게 많이 넣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 더 알려주세요.
A : 이 당시의 요리의 기준은, 한두개의 향신료를 적게 넣는다기보단, 여러 향신료를 (양이 적던 많던) 다양하게 사용하여 '향을 살려야' 고급 요리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향신료에 대한 몰개성적인 입맛 때문은 아닙니다. 메나지에 드 파리에서 언급된 죽(수프) 요리에는 '향신료는 일찍 넣으면 향이 달아나기 때문에, 맨 마지막에 넣어야 한다'라고 하거나, '향신료들을 잘 빻되, 체에 거르지 말라'는 것을 두번씩이나 강조한 구절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맛도 맛이지만, 향과 맛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향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향신료는 저번에도 언급했다시피 사회적 지위와 부의 상징이였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 '나는 향신료를 많이 넣어 먹는 부자다'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하여 향신료를 과다하게 뿌려 먹었습니다. 물론 이는 '연회를 위한 쇼'라는 측면이 강했고, 평소에 이렇게 차려먹긴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향신료 떡칠 요리'를 소개한 책자들은 대중이 아닌 '책을 살 수 있고, 이런 향신료를 구매할 수 있는 사람들' - 즉, 왕실과 같은 상류층을 흉내내고 싶어하는 중산층과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였기 때문에 가능했었던 현상입니다. 저번 포스팅에서 '향신료 떡칠 요리에 여러가지 변수가 있다'는 건 이런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나마 일반인들은 이런 호사는 꿈도 못꾸고, 그저 약간의 약초와 대체 향신료를, 그것조차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약초와 소금만으로 요리를 해야 했고, 그 소금조차도 세금 때문에 조금만 써야 했습니다.
[9]

<역사연구소 교관 자리에 본인이 왜 보이는지 신경쓰지 말것ㅇㅇ (!?!?)>
Q : 통구이 요리를 할때, 꼭 사람 둘이서 돌려야 하나요? 저번 배역때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A : 이런 비효율적인 현상은 14세기 후반에 가면 나아집니다. 처음에는 요리보조사 둘이 힘들여서 고기를 돌려 구웠지만, 14세기 후반부터는 햄스터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개를 쳇바퀴에 넣고 뛰게 해서 롤러를 돌렸습니다.




[11]

Q : 혹시, 집이 가난해서 먹을게 없거나, 마을이나 나라에 기근이 들면 어떻게 하지요?
A : 당시 시골이나 도시의 일반인들은 기근이 들거나 하면 고양이나 말 등을 잡아먹었습니다. 당시 발간된 일부 요리책에도 이와 관련된 레시피들이 적게나마 존재했습니다.
평상시에는 말고기를 먹는다는 얘기가 나면, (저번 포스팅에 설명한대로) '동네 사제나 주교와 오붓하게(?) 1:1 면담을 해야할' 정도로 인식이 좋지 않았지만, 기근과 같은 비상시엔 허용되었습니다. 실제 프랑스 왕국의 카페 왕조 말기에는 몽포콩 (Montfaucon [彿])이라는 도시에 차려진, 죽은 말을 도축하는 작업장에 단속을 나왔던 병력을 철수시키면서 '쥐와 말고기라도 잡아먹어야 하는 극빈자들을 위해서' 쥐고기와 말고기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게 규제를 완화한 적이 있습니다.
[12]

Q : 그러면, 당시 이런 '괴식'들에 대한 레시피 몇개를 알려주세요.
A : 여기 몇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무도 현재까지 복원할 시도를 하지 않아서 자세한 요리법은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13]

Q : 이당시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먹지 않는 부위를 많이 먹었다는데, 관련된 다른 요리가 있나요?
A : 한가지 소개해 드릴수는 있는데, 그게 좀......


이번 시간은, 최종화...아이씨바 상이 다 차려질동안,
그동안 다 쓰지 못한 소재를 풀어보는 질문시간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ㅅ'///
출처들은 1부에 표기한 인용자료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그리고, 강조하는 겸 해서, 일부 질문은 역사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있는 매우 당연한 지식도 포함됩니다.
주의 : 이번 포스팅은 '그동안 사용못한 자료처분'에 목적이 있으므로. 역사와 관련된 사진이 많지 않습니다.
[1]

Q : 지금 우리가 흔히 먹는 치즈 중 하나가 체다 치즈 (Cheddar Cheese [英])라던데, 당시에도 이 치즈를 먹었나요?
A : 잉글랜드의 서머셋 지방의 체다라는 마을에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해서 체다 치즈라고 부르는 이 치즈는, 1600년대부터 등장한, 근세기의 치즈입니다. 1655년경부터 언급이 되는 이 '체다 치즈'는 처음엔 치즈 제조 공정만을 가리키는 말이였고, 18세기부터 정립화됩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연재중인 시점에서인 14세기의) '체다 지방에서 만들어진 치즈'가 현재의 체다 치즈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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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당시에도 과자 (Cookie [英])가 후식으로 제공되었나요? 설명에선 '튀긴 밀가루 반죽에 계피가루와 설탕를 뿌려서 과자로 먹었'다고 했잖아요?
A : 현재 쿠키라고 부르는 과자엔 베이킹파우더나 베이킹 소다가 들어가는데, 이 둘은 18세기에 발명되었습니다. 베이킹 소다나 파우더 대용으로 쓸 수 있는 물질인 중탄산암모늄 (Ammonium Bicarbonate / Sal Volatile / Salt of Hartshorn)은 중세 말기에 발견되긴 했지만, 17세기 이전까진 제빵이나 제과에 이용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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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유럽은 농경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고기 소비가 많았던 시대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기를 제공하는 도축업자의 사회적 대우는 어떠했나요?
A : 먼저 확실히 해두자면, 지금부터 얘기하는 정육점은 당시 대부분의 점포가 그랬듯이, 도축장과 정육점 모두를 의미합니다.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권 나라에서는 도축업자를 사람 대접을 해주진 않았지만, 여기선 상대적으로 나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프랑스 왕국의 예를 들면, 필리프 2세 치하의 파리 내엔 많은 정육점들이 성업중이였었고, 이 점주들은 시내 의회나 행정관청 (Prévoté [彿])의 요직을 차지했고, 이들 중 일부는 귀족으로 승급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400년대엔 이런 도축업자들이 푸아티에에서 도축업자들이 영주 앞에서 선서를 하면서 '데모'를 벌이는 일까지 벌어졌고, 이들의 영향력은 도시 내에서 증대되었습니다.
또한, 이제까지 소개한 프랑스 왕국의 요리책이였던 '메나지에 드 파리 (Le Menagier de Paris [彿])에선 (발간 당시 기준으로) 파리 시내의 유명한 정육점의

하지만 이것이, '모든 도축업자가 부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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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듣고보니, 도축업자가 무슨 사업자 같은데...
A : 실제로 그런 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14세기쯤엔 그들 스스로 조합(길드)을 결성해서, 그들이 고용한 중계인 (Nourrigiers)와 양치기들을 통한 조합 소속 도축업자들이 쓸 가축 - 특히 양을 소유 및 방목하고, 그 도축으로 얻어진 부산물들 - 가죽이나 양모, 기름 등을 판매하거나 투자하는 등 고도의 사업체로 발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방목지에 거주중인 주민들과 마찰을 빛거나, 채소를 기르는 현지 농민들과 충돌이 일어났던 적도 있었습니다.
고기와 관련된 얘기는 아니지만, 중세 유럽에선 사순절 덕택에, 사순절 기간에 먹을 생선을 양식하거나, 이를 위한 치어 납품 사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번 사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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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저번 향신료 편에서 언급한 식품위생에 관한 법에 대해서 더 얘기해 주세요. 당시 식품점...그러니까, 정육점이나, 생선가게를 차릴때 나라에서 규제같은 걸 한 적이 있었나요?
A : 여러번 언급한 사항이지만, 당시의 식품위생 규정은 현대인의 생각보다 엄격했습니다. 비록 냉장고나 방부제 등은 없었지만, 상한 고기나 음식을 먹으면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것쯤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정육점에선 진열대 한개에 모든 고기를 '해가 떠서 해가 질 때'까지만 고기를 팔 수 있고, 촛불이나 등불로 주위를 밝혀서 고기를 판매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생고기와 더불어 염장고기도 팔긴 했지만, 손님이 고기의 신선도를 직접 확인하고 살 수 있게 법으로 규제를 한 셈입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바가지를 씌우거나, 교묘하게 색을 가려서 오래된 고기를 파는 양심불량업자 또한 존재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정육점들은 동물을 도축하고 난 찌꺼기 고기들을 점포 문 밖에 버렸는데, 이런 이유때문에 위생문제가 불거지면서 시내 중심에 정육점을 운영할 수 없게 규제가 가해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3세기까진 이런 정육점들은 도시 외곽에 임시로 마련된 부도심 지역에 입점이 가능했지만, 점차 육류소비가 많아지면서 규제가 완화되고, 정육점들이 도시 중심부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생선가게도 마찬가지였는데,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생선가게는 아무리 염장을 해서 팔았다고 해도 비린내가 심한 품목에 속해서, 이들 점포를 한 지점에 다닥다닥 몰아서 짓지 못하게 규제한 것도 있습니다.
[6]

Q : 저번 향신료 편에선 향신료 사용은 요리사의 재량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럼 요리사가 마음대로 써도 되나요?
A : 요리에 얼마만큼의 향신료를 쓸 것인가는 요리사의 재량입니다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향신료는 귀중품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여타 보물이나 재산들처럼 관리대상 품목에 들어갔고, 주기적으로 관련 장부를 작성하는 것이 의무였기 때문에, '물 쓰듯이' 쓸 수는 없었습니다.
일례로, 13세기에는 향신료의 보관 또한 전적으로 요리사의 업무였었지만, 14세기에 들어서면 (프랑스 왕국에서는) 이런 향신료들과 같은 식재료를 관리하기 위해 왕실과 각 지방의 영주들이 식품담당관을 임명했는데, 잔치가 열리면 주방장 (각 영지의 수석 요리사)가 전체 코스에 필요한 향신료의 양을 신청하여 수령하고, 이를 각 하위 조리사에게 분배하는 형식으로 관리되었습니다.
[7]

Q : 그러면, 요리책에서 향신료나 재료의 정량을 알려주는 건 언제부터였나요? 그리고 왜 그런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나요?
A : 요리책에서 각종 재료의 정량을 언급한 때는 19세기부터였습니다. 중세 유럽이나 근대엔 책 자체가 고급품이였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고, 무엇보다도 당시 요리책의 저자들은 그 책을 '평범한 주부'가 아니라 전문가용으로 편찬했기 때문입니다. (몇몇을 제외한) 이제까지 올려둔 요리 레시피엔 향신료가 꼭 언급이 되는데, 이는 '이 요리책을 보는 사람은 최소한 요리에 대한 지식과 경력이 평균 이상이고, 높은 사람에게 고용된 요리 전문가'라고 간주했기 때문에, 굳이 정확한 양을 쓸 필요는 없다고 여긴 탓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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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당시 유럽 요리에서 향신료를 왜 그렇게 많이 넣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 더 알려주세요.
A : 이 당시의 요리의 기준은, 한두개의 향신료를 적게 넣는다기보단, 여러 향신료를 (양이 적던 많던) 다양하게 사용하여 '향을 살려야' 고급 요리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향신료에 대한 몰개성적인 입맛 때문은 아닙니다. 메나지에 드 파리에서 언급된 죽(수프) 요리에는 '향신료는 일찍 넣으면 향이 달아나기 때문에, 맨 마지막에 넣어야 한다'라고 하거나, '향신료들을 잘 빻되, 체에 거르지 말라'는 것을 두번씩이나 강조한 구절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맛도 맛이지만, 향과 맛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향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향신료는 저번에도 언급했다시피 사회적 지위와 부의 상징이였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 '나는 향신료를 많이 넣어 먹는 부자다'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하여 향신료를 과다하게 뿌려 먹었습니다. 물론 이는 '연회를 위한 쇼'라는 측면이 강했고, 평소에 이렇게 차려먹긴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향신료 떡칠 요리'를 소개한 책자들은 대중이 아닌 '책을 살 수 있고, 이런 향신료를 구매할 수 있는 사람들' - 즉, 왕실과 같은 상류층을 흉내내고 싶어하는 중산층과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였기 때문에 가능했었던 현상입니다. 저번 포스팅에서 '향신료 떡칠 요리에 여러가지 변수가 있다'는 건 이런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나마 일반인들은 이런 호사는 꿈도 못꾸고, 그저 약간의 약초와 대체 향신료를, 그것조차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약초와 소금만으로 요리를 해야 했고, 그 소금조차도 세금 때문에 조금만 써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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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통구이 요리를 할때, 꼭 사람 둘이서 돌려야 하나요? 저번 배역때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A : 이런 비효율적인 현상은 14세기 후반에 가면 나아집니다. 처음에는 요리보조사 둘이 힘들여서 고기를 돌려 구웠지만, 14세기 후반부터는 햄스터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개를 쳇바퀴에 넣고 뛰게 해서 롤러를 돌렸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사람 대신 개 두마리가 뜀박질을 하니, (저 필사본 시점에서) 200년만 꽉물고 기다리시라!! (!?!?)>
[10]

Q : 당시 사용했던 채소중에 브로콜리 (Broccoli [英])가 있었나요? 저번에 로마 제국 관련 사극을 봤었는데, 브로콜리가 곁들여진 요리를 본 적이 있어요.
A : 확실하진 않다고 합니다. 물론 고대 로마제국 시대(BC 6세기)엔 지중해 북부에서 재배된 적이 있었고, 귀한 채소 대접을 받았을 만큼 유서깊은 채소이지만, 이 브로콜리가 실제 어떤 채소를 말하는지는 아직 확실히 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물론 1500년대의 미술품엔 브로콜리계 식물인 - 그러니까, 컬리플라워 (Cauliflower [英])이 그려져 있지만, 이것이 현대의 브로콜리나 컬리플라워인지, 아니면 종자가 개량되기 전의 식물인지는 이견이 있습니다. 때문에 해외의 리인액터들도 브로콜리를 사용하길 주저하고 있습니다.

요하임 베케라르 (Joachim Beuckelaer : 1530-1574)의 1564년작인 '과일과, 채소, 가금류를 파는 상인과

피터 아르첸 (Pieter Aertsen : 1508 ~ 1575)의 1567년작인 '야채 상인'. 두 그림에 그려진 브로콜리들을 주목
[11]

Q : 혹시, 집이 가난해서 먹을게 없거나, 마을이나 나라에 기근이 들면 어떻게 하지요?
A : 당시 시골이나 도시의 일반인들은 기근이 들거나 하면 고양이나 말 등을 잡아먹었습니다. 당시 발간된 일부 요리책에도 이와 관련된 레시피들이 적게나마 존재했습니다.
평상시에는 말고기를 먹는다는 얘기가 나면, (저번 포스팅에 설명한대로) '동네 사제나 주교와 오붓하게(?) 1:1 면담을 해야할' 정도로 인식이 좋지 않았지만, 기근과 같은 비상시엔 허용되었습니다. 실제 프랑스 왕국의 카페 왕조 말기에는 몽포콩 (Montfaucon [彿])이라는 도시에 차려진, 죽은 말을 도축하는 작업장에 단속을 나왔던 병력을 철수시키면서 '쥐와 말고기라도 잡아먹어야 하는 극빈자들을 위해서' 쥐고기와 말고기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게 규제를 완화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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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그러면, 당시 이런 '괴식'들에 대한 레시피 몇개를 알려주세요.
A : 여기 몇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무도 현재까지 복원할 시도를 하지 않아서 자세한 요리법은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레시피] 고슴도치 요리 (Hedgehogs)
- 메나지에 드 파리가 말합니다. 퍼펰트레비앙한 주부라면 단백질 공급웡에 대하여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
① 고슴도치를 잡아 목을 따고, 털(가시)을 뽑아 태운 후, 내장을 제거한다.
② ①의 과정이 끝났으면, 팔다리를 (통닭 요리처럼) 고정한 후, 수건으로 싸서 물기를 뺀다.
- 만약 고기가 뻣뻣해서 고정이 안된다면, 뜨거운 물에 담근 후, 잡아당겨 펴면 된다.
③ ②에서 물기가 다 빠졌으면, 구워서 접시에 올린다.
④ 취향에 따라 카멜린 소스 (Cameline Sauce)나 페이스트리에 야생오리구이 소스와 먹는다.
※궁금하신 분은, 링크에서 Hedgehog 항목을 확인할 것.

① 고슴도치를 잡아 목을 따고, 털(가시)을 뽑아 태운 후, 내장을 제거한다.
② ①의 과정이 끝났으면, 팔다리를 (통닭 요리처럼) 고정한 후, 수건으로 싸서 물기를 뺀다.
- 만약 고기가 뻣뻣해서 고정이 안된다면, 뜨거운 물에 담근 후, 잡아당겨 펴면 된다.
③ ②에서 물기가 다 빠졌으면, 구워서 접시에 올린다.
④ 취향에 따라 카멜린 소스 (Cameline Sauce)나 페이스트리에 야생오리구이 소스와 먹는다.
※궁금하신 분은, 링크에서 Hedgehog 항목을 확인할 것.
[오늘의 레시피] 고양이 구이 (GATO ASADO COMO SE QUIERE COMER)
- 1529년의 바르셀로나에서 발간한 요리책 (Libre del Coch [四])가 소개하는 고양이 요리!! (!!!)
① 살찐 고양이를 데려온다.
② 잡는다.
③ 고양이가 완전히 죽었으면, 머리를 떼서 버린다. 먹으면 사후에 구원을 못받으니 먹지 말것.
④ 가죽을 완전히 벗긴 후,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한 후 잘 씻는다. 그리고 깨끗한 천으로 싼다.
⑤ ④를 하루동안 땅에 묻어둔다. 그리고 땅에서 꺼내서, 그 구덩이에 불을 지펴서 굽는다. 취향에 따라 굽기 전, 기름과 마늘을 바른다.
⑥ 다 구워졌으면, (토끼고기 요리처럼)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접시에 담는다.
⑦ 기호에 따라 기름과 마늘을 섞은 육수와 먹을 수 있다.
※궁금하신 분은, 링크에서 123번 항목을 확인할 것.
- 1529년의 바르셀로나에서 발간한 요리책 (Libre del Coch [四])가 소개하는 고양이 요리!! (!!!)
① 살찐 고양이를 데려온다.

③ 고양이가 완전히 죽었으면, 머리를 떼서 버린다. 먹으면 사후에 구원을 못받으니 먹지 말것.
④ 가죽을 완전히 벗긴 후,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한 후 잘 씻는다. 그리고 깨끗한 천으로 싼다.
⑤ ④를 하루동안 땅에 묻어둔다. 그리고 땅에서 꺼내서, 그 구덩이에 불을 지펴서 굽는다. 취향에 따라 굽기 전, 기름과 마늘을 바른다.
⑥ 다 구워졌으면, (토끼고기 요리처럼)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접시에 담는다.
⑦ 기호에 따라 기름과 마늘을 섞은 육수와 먹을 수 있다.
※궁금하신 분은, 링크에서 123번 항목을 확인할 것.
[13]

Q : 이당시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먹지 않는 부위를 많이 먹었다는데, 관련된 다른 요리가 있나요?
A : 한가지 소개해 드릴수는 있는데, 그게 좀......
[오늘의 레시피] 양 꼬추 요리 (!!!!)

- 생긴 건 괴랄하지만, 맛을 위해선 편견을 가지면 안됩니다. (!?) 네덜란드 지방의 요리책인 고급 요리책 (Wel ende edelike spijse [和] : 1035)에 소개된 쫄깃하고 맛있는 천연기념물 요리
[중세 네덜란드어 원문]
'XXIII. Der leckers scapin roede' dwaetse wel ende keertse ende dan nemt sof fraen ghewreuen die doderen van .x. eyeren ende enen lepel melken tem pert metten vetten ende vaerst die roede fol.11v Ende wacht dat niet te vul en sy ende doetse zieden in eenen wal ende dan
braedse ende pouderse met poudere van ghingebare ende Caneele ende een lettel pepers.
[현대 네덜란드어 번역본]
2.23. Schapenpenis voor de lekkerbek
Was ze goed en keer ze binnenstebuiten. Neem dan fijngestampte saffraan, de dooiers van tien eieren en een lepel melk. Vermeng het met vet en vul de penissen, maar let op dat het niet te vol is. Blancheer ze en braad ze dan. Bestrooi ze met poeder van gember, kaneel en een beetje peper.
[현대 영어 번역본]
① 양 꼬추를 자른다. (고자라니!!!)

② 자른 꼬추를 안팎으로 잘 씻는다.
③ 샤프란 한줌과, 계란 노른자 10개, 그리고 우유 몇 숟갈을 넣는다.
④ ②와 ③을 잘 섞는다. 너무 섞지 않도록 주의할 것.
⑤ 두드려서 연하게 한 후, 굽는다.
⑥ 다 구웠으면, 생강가루와 계피가루, 그리고 약간의 후추를 뿌린다.

⑦ 맛있게 먹는다. (!!!!!!!!!!!!!)
※궁금하신 분은, 링크에서 관련 검색어로 항목을 확인할 것.

- 생긴 건 괴랄하지만, 맛을 위해선 편견을 가지면 안됩니다. (!?) 네덜란드 지방의 요리책인 고급 요리책 (Wel ende edelike spijse [和] : 1035)에 소개된 쫄깃하고 맛있는 천연기념물 요리
[중세 네덜란드어 원문]
'XXIII. Der leckers scapin roede' dwaetse wel ende keertse ende dan nemt sof fraen ghewreuen die doderen van .x. eyeren ende enen lepel melken tem pert metten vetten ende vaerst die roede fol.11v Ende wacht dat niet te vul en sy ende doetse zieden in eenen wal ende dan
braedse ende pouderse met poudere van ghingebare ende Caneele ende een lettel pepers.
[현대 네덜란드어 번역본]
2.23. Schapenpenis voor de lekkerbek
Was ze goed en keer ze binnenstebuiten. Neem dan fijngestampte saffraan, de dooiers van tien eieren en een lepel melk. Vermeng het met vet en vul de penissen, maar let op dat het niet te vol is. Blancheer ze en braad ze dan. Bestrooi ze met poeder van gember, kaneel en een beetje peper.
[현대 영어 번역본]
① 양 꼬추를 자른다. (

② 자른 꼬추를 안팎으로 잘 씻는다.
③ 샤프란 한줌과, 계란 노른자 10개, 그리고 우유 몇 숟갈을 넣는다.
④ ②와 ③을 잘 섞는다. 너무 섞지 않도록 주의할 것.
⑤ 두드려서 연하게 한 후, 굽는다.
⑥ 다 구웠으면, 생강가루와 계피가루, 그리고 약간의 후추를 뿌린다.


※궁금하신 분은, 링크에서 관련 검색어로 항목을 확인할 것.

다음엔, 대망의 최종화.
연회절차와 식탁예절 등이 포스팅됩니다 'ㅅ'////
※오늘의 브금 : Hoe? (CCS OST)







덧글
리호코는 귀엽구나!!
리호코는 귀엽구나!!!
마코토는 귀엽구나!
마코토는 귀엽구나!!
마코토는 귀엽구나!!!
리호코는 귀엽구나!!
리호코는 귀엽구나!!!
마코토는 더 귀엽구나!
마코토는 더 귀엽구나!!
마코토는 더 귀엽구나!!!
근데 리츠코는 왜 당수가 직접?? ㄱ=-
리호코는 귀엽구나!!
리호코는 귀엽구나!!!
셔먼 / 동물보호론자들이 출동할 시간임!! (!?!?)
차원이동자 / 대체 괴식을 얼마나 드신거임 'ㅅ'!?!?
셰이크 / 게다가 쫄깃하고 맛있는 그...(!?!?)
대공 / 내심 기대했는데, 안옴 ;ㅅ;
세피아 / 그야 당은 리츠코 어른이를 예뻐하니까요 'ㅅ'//
死海文書 / 동물보호론자는 종종 역사를 등한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가필옹(?) / 그러게나 말입니다 'ㅅ') (!?!?)
꿈꾸는소 / 豚君 : 고자라니!!!!
터미베어 / 꼬추를 생으로 뜯는건 어느 인외마경임!? (!?!?)
萬古獨龍 / 'ㅅ'!!
누군가의친구 / 댁의 동생은 못보게 하면 됩니다 'ㅅ'// (!?!?)
OmegaSDM / 그보다 더한 양반들이 바로 빅토리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