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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극장 앞길을 메운 군중은 수백 명을 넘었는데, 이들은 언제 준비하였는지 조선독립만세란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만세삼창을 외치면서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물결 속에서, 나는 태극기를 처음으로 보았다. 감추어두었던 것인지 아니면 항복을 알고 난 후에 급조한 것인지는 몰라도, 일왕담화 몇 시간 후에 그 깃발이 휘날리게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 죽은 듯이 일제 정치를 인내해온, 바보스럽게만 보여졌던 조선인들에게 영원히 불타는 애국심과 민족정신이 엄연히 살아 있다는 역사의 증언을 나는 그 순간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는 그 후 여러 날 동안 잠을 잊은 채 그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지게 되었다.
- 황해문화 1994년 겨울자에 실린 임영방의 '내가 겪은 해방 - 인중(仁中) 시절과 태극기에 대한 추억' 중
[2]




[3] ※ 작년 포스팅 재활용 (...)




[덧]











나는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극장 앞길을 메운 군중은 수백 명을 넘었는데, 이들은 언제 준비하였는지 조선독립만세란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만세삼창을 외치면서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물결 속에서, 나는 태극기를 처음으로 보았다. 감추어두었던 것인지 아니면 항복을 알고 난 후에 급조한 것인지는 몰라도, 일왕담화 몇 시간 후에 그 깃발이 휘날리게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 죽은 듯이 일제 정치를 인내해온, 바보스럽게만 보여졌던 조선인들에게 영원히 불타는 애국심과 민족정신이 엄연히 살아 있다는 역사의 증언을 나는 그 순간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는 그 후 여러 날 동안 잠을 잊은 채 그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지게 되었다.
- 황해문화 1994년 겨울자에 실린 임영방의 '내가 겪은 해방 - 인중(仁中) 시절과 태극기에 대한 추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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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작년 포스팅 재활용 (...)
일본군 정부는 또 원생림 벌채를 행하여 광대한 삼림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일본은 농업 시스템의 근대화를 도모하지 않고, 다만 성과를 올리고자 하였다. 이 외에도 영향역이 큰 요인은 장기적 전망 없이 증가시킨 가축의 도살이였다. 가축은 농업과는 일정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식량 생산의 증감에 영향을 주었다. 식량 - 특히 쌀의 생산은 감소하였으며 민중의 생활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더욱 궁핍해졌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민중은 논밭의 수확물 대부분을 군정에 공출하도록 강요받았다. 식량 부족으로 인한 병이 맹위를 떨쳤다. 일본군은 경제면에서 향한 수탈의 결과, 민중의 생활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전 인도네시아에 빈곤이 확대되었고, 기아가 만연하였다. 그 결과 특히 대도시에서는 거지들과 극빈자가 출현하였다. 일본 점령 시대에 가장 고통을 강요당한 사람들은 노동장ㅆ다, 처음 그들은 노무자가 되도록 회유받았으며, 권유가 실패했을 경우 강제적 수단이 취해졌다. 노무자에 대한 대우는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의 건강은 보호받지 못했으며, 식량은 부족하였고, 노동은 너무 가혹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었다.
일본은 인도네시아에 온지 수개월만에 가면을 벗어버리고, 아시아 여러 나라를 점령하고, 민중들을 공공연히 억압하였다. 이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일어났다. 그 압제로 인해 여기저기에서 일본에 대한 반란이 발생하였다. 일본은 모든 반란을 제압하였지만, 인도네시아의 민중의 저항은 그치지 않았다. 반란 진압 당시의 일존군의 잔학행위도 민중의 저항은 억누를 수 없었다. (중략) 일본에 대한 가장 큰 반란 중 하나는 브리탈 의용군 반란이였다. (중략) 이 의용군들의 반란은 실패하였다. 하지만 이 반란은 외국의 압제에 굴하고 있었던 인도네시아 민중들에게 독립정신을 일깨워주는 역활을 하였다.
- 인도네시아의 1970년대 역사교과서 中
일본은 인도네시아에 온지 수개월만에 가면을 벗어버리고, 아시아 여러 나라를 점령하고, 민중들을 공공연히 억압하였다. 이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일어났다. 그 압제로 인해 여기저기에서 일본에 대한 반란이 발생하였다. 일본은 모든 반란을 제압하였지만, 인도네시아의 민중의 저항은 그치지 않았다. 반란 진압 당시의 일존군의 잔학행위도 민중의 저항은 억누를 수 없었다. (중략) 일본에 대한 가장 큰 반란 중 하나는 브리탈 의용군 반란이였다. (중략) 이 의용군들의 반란은 실패하였다. 하지만 이 반란은 외국의 압제에 굴하고 있었던 인도네시아 민중들에게 독립정신을 일깨워주는 역활을 하였다.
- 인도네시아의 1970년대 역사교과서 中
원폭 투하시에 나는 12세, 나의 작은 마을은 이로 말미암아 긴 고통에서 해방되었다고 기뻐하였다.
- 이스마일 후세인 (말레이시아의 작가. 히로시마에서 열린 아시아 문학자 회의에서.)
- 이스마일 후세인 (말레이시아의 작가. 히로시마에서 열린 아시아 문학자 회의에서.)



<우리의 위대한 인민, 승리자 인민에게 영광을! [露]>

오늘은 국내적으로 보면, 8.15 광복 67주년이며
세계사적으로 보면 세계사에 나치 독일과 더불어
전례없는 흉악무도함으로 악명과 패악질을 부렸던
일제 제국주의자와 파시스트가 망한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8월 15일이 어찌 국내의 경사일 뿐일 수 있겠습니까?
본 블로그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열사와 의사들,
그리고 그 참혹했던 그날 일제 제국주의자 침략자와 맞서 싸우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아시아 각국의 투사들과
연합군 소속의 모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세계사에 나치 독일과 더불어
전례없는 흉악무도함으로 악명과 패악질을 부렸던
일제 제국주의자와 파시스트가 망한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8월 15일이 어찌 국내의 경사일 뿐일 수 있겠습니까?
본 블로그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열사와 의사들,
그리고 그 참혹했던 그날 일제 제국주의자 침략자와 맞서 싸우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아시아 각국의 투사들과
연합군 소속의 모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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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잊어먹고 말안할 뻔했는데,
만세일계에 졸라 광빨나는
자랑스러운 대일본제국 황국신민 병신들은
빨리 가서 할복을 하거나
온몸에 신나 바르고 성냥불 켜기. 롸잇나우!!!!
만세일계에 졸라 광빨나는
자랑스러운 대일본제국 황국신민 병신들은
빨리 가서 할복을 하거나
온몸에 신나 바르고 성냥불 켜기. 롸잇나우!!!!







덧글
아무리 애국심이 부족해도 ...
└ KITUS + RuBisCO / 옆집은 벌써 가고싶어서 안달이 난듯요. 2차대전 중 최약체이자 야쿠자 레벨의 폭도들을 자랑스러워하는걸 보면, 수준이 참 낮아서 말섞기가 민망해집니다ㅋ
└ FlakGear + 놀자판대장 / 쟤들이 괜히 잉여쓰레기 소릴 듣겠냐능 'ㅅ'
└ 死海文書 / 옆집은 솔까말, 그냥 국으로 뜯겨도 가만있어야하는게 도리임ㅇㅇ
└ 만슈타인 / 일베랑 디씨 정사갤에 뭘바람?
└ 가필옹(?) / 286은 공학사를 위해 보존되어야할 유물이지만, 쟤들은 쓸모가 없습니다.